고흥군청 로고

열린민원

소통참여

행정정보

군정소식

고흥안내

군청안내

이용안내

포두면

연혁

  • 757년 보성군 속현의 서천부곡
  • 1441년 흥양현
  • 1895년 포두면
  • 1963년 봉래면에서 오취리 편입
  • 1990년 송산출장소 개소
  • 1998년 송산출장소 폐지

지명유래

포두면 지명유래-남성리(南星里),옥강리(玉崗里),차동리(車洞里),세동리(細洞里),길두리(吉頭里),상대리(上大里),봉림리(鳳林里),장수리(長水里),상포리(上浦里),남촌리(南村里),송산리(松山里),오취리(梧翠里)
남성리
(南星里)
익금
(益金)
마을 앞에 모래가 많이 쌓이는 해안이 있어 장사리(長沙里)라고 부르다가 어촌지명으로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뒷산 지형이 육구미(六拘尾, 여섯 마리 개의 꼬리가 모인 형국)이라는 뜻에서 ‘육구미’리라 하였으며 그 후 개모양에 의한 지명으로 인재가 배출되지 않는다하여 발음이 비슷한 익금(益金)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포두면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마을이다.
남성
(南星)
남성마을은 옥강리를 연결하는 성(城)터(지금의 마목성(馬牧城))가 있고 이 성(城)을 옛날에는 남포성(南浦城)이라 부르다가 남성(南星)으로 바꾸어 불렀는데 조선말에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쪽 하늘의 노인성(老人星)이 비춰주어 장수(長壽)하는 이가 많다는 뜻에서 남성(南星)이라 부르고 있으며 남성리의 중앙 마을로서 포두면내에 가장 큰 마을이다.
옥강리
(玉崗里)
우산
(牛山)
원래 옥강리 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옛날마을 부근에 소를 기른 목장이 있었고 마을 앞이 바다이므로 “우목포(牛牧浦)”라 부르다가 1936년(일제강점기)에 마을을 한자화할 때 마을 뒷산이 와우형(臥牛形)이라해서 우산(牛山)으로 바꾸어 1986년 법정마을로 독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초
(內草)
외초마을과 경계지역의 산모양이 새머리와 같다고 하여 “새두”라 하였고 옛 지도에는 두 마을이 초량(草梁)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초량의 안쪽마을이라는 뜻에서 “안새두”라고 불렀는데 1936년 마을 명을 한자화할 때 내초(內草)라고 개칭한 이래 법정마을로 독립되어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초
(外草)
처음에는 밖에 있는 마을이라해서 “바깥새두”라 하였는데 그 후 초량(草梁)의 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1936년(일제강점기)에 마을 명을 한자화할 때 외초(外草)라고 불렀으며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로 독립된 이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암
(蜂岩)
원래 옥강리의 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마을 동남쪽에 “까막재”가 있다고 하여 오치(烏峙)라고 불러왔으며 마을 뒷산중턱에 벌바위가 있다고 하여 봉암(蜂岩)이라 부르다가 1980.1.1부터 자연마을로 승격 독립된 이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암
(亭岩)
옥강리 외초에 속해 있던 마을로 지금부터 70년 전 일제강점기시대에 진흙을 빚어 기와와 옹기를 구운 곳 이라 하여 “와등”이라 부르다가 해창만 간척지 개답 후 외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마을 뒷편 바위가 많아 1987년도에 자연마을로 승격시 정암(亭岩)마을로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차동리
(車洞里)
신촌
(新村)
원래 차동리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설촌(設村)당시에 당산골 주민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새터에서 영원 무궁한 마을로 번창된다”는 뜻으로 신촌(新村)이라고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87년도에 자연마을로 승격됐다.
내산
(內山)
원래 차동리지역에 속하며 마복산(馬伏山)골짜기에 두 개의 마을이 있어 산내(산안에 있는 마을)라고 부르며 두 마을의 안쪽에 있다고 하여 “안산내”라 불리어 오다가 1936년(일제강점기)에 마을 명을 한자화 할 때 안산내를 내산(內山)으로 개칭(改稱)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산
(外山)
원래 차동리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마복산 골짜기 아래 두 마을 중 남쪽바깥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큰산내”라고 불리어왔으며 1936년(일제강점기)에 마을 명을 한자화 할 때 마복산 좌측 주변의 기암괴석과 산수가 어울리는 남쪽밖에 위치한다하여 외산(外山)이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동리
(細洞里)
원세동
(元細洞)
확실한 설촌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김(金), 임(林), 최(崔)씨의 삼성이 숲몰, 참샘몰 양쪽에 각각 정착하여 촌명(村名)이 “용동(龍洞)”으로 불리다가 70~80여 년 전 부터 가느다란 골짜기에 있다는 뜻으로 “가는골”이라 하였으며 같은 뜻으로 세동(細洞)이라 부르다가 세동리(細洞里)의 중앙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원세동(元細洞)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장촌
(長村)
자세한 설촌(設村)과정은 알 수 없으며 1910년 한일강제병합 전까지 마을을 장재(藏財)라 하다가 일제강점기시대 장촌(長村)으로 불렀으며 옛날에 장자(長者)가 살았다고 하여 오래 부촌번영(富村繁榮)한다는 뜻에서 해방 후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 시 장촌(長村)마을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지
(楊地)
망덕산 양지바른 기슭에 형성된 이 마을은 건너편 미후(米朽)마을을 풍수지리상 음지(陰地)라 하고 이 마을을 양지(陽地)라하다가 1954년 회관이 전소된 후 마을지명이 불길하다하여 1956년 리동행정구역 정리시 양(陽)을 양(楊)으로 바꾸어 버들양자로 써서 마을명을 양지(楊地)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후
(米朽)
원래 세동리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마을명을 처음에는 가산(佳山)이라 부르다가 한일강제병합 이후 농경지가 확대되어 마침내 곡창을 이루자 창고에서 쌀이 썩을 정도로 많이 생산되었다 하여 불리던 마을이름 “사시기” “쌀새기”를 한자화하여 미후(米朽)로 고쳐 부른 이후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길두리
(吉頭里)
봉덕
(鳳德)
마을 앞 섬이름을 본따 “대섬”이라 부르다가 1700년경 지리적으로 마을 앞 대섬에는 대나무가 무성했고 그 앞에는 오동나무가 많았는데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았다는 새를 비유하여 “봉황새”만이 살곳이라 하여 “봉(鳳)”字를 썼고 새가 하늘 높은 곳에서 세상에 덕(德)이 빛남을 본 후에야 인간이 나타난다하여 “덕(德)자를 썼다고 하며 또 마을 뒤에 비봉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 해창만의 덕을 입는다는 뜻에서 비봉산의 봉(鳳)과 덕(德)이 합하여 마을 명을 봉덕(鳳德)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덕촌
(德村)
원래 길두리 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조선시대 말엽에는 큰골이라 불리어 왔으며 해방 후 정일권 전국무총리가 마을 명을 자활촌(自活村)이라 명명하였는데 1979년 고흥군 부군수 김철환이 덕(德)을 크게 쌓을 마을이 될 것이라 하여 마을 명을 덕촌이라 고쳐 부른 이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
(雁洞)
원래 안골(內洞)이라 칭해와으나 약 300여 년 전 입향조 정세주(丁世胄)의 아들인 하협(夏協)의 호를 안동(雁洞)이라고 한데서 연유 되었다고 하며, 아울러 마을의 지형(地形)이 기러기가 알을 품은 것 같다는 뜻, 또는 노옹수조형국(老瓮垂釣形局) 즉 늙은이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으니 해가 거듭할수록 고기바구니가 가득할 것이니 후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릴 것 이라고 해서 마을 명을 안동이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동
(前洞)
원래 길두리의 중앙부에 해당된 마을로서 옛날에는 “길머리”라 하였으며 길두리(吉頭里)의 앞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1912년 한일강제병합 전까지 전동(前洞)이라 부르다가 1946년 다시 길두리로 편입한 후 1948.8.15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전동이라 불러 독립마을로서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후동
(後洞)
서기 1590년부터 약 150년 동안 하대리(下大里)로 불리다가 조선 영조년간 1740년부터 후동(後洞)으로 개칭하였고 그 후 1914년 일제초기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을 명을 길두리의 뒤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다시 후동(後洞)으로 불러왔으며 해방 후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시 독립마을이 된 이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동
(新興洞)
원래 길두리 지역으로서 당시의 마을 명을 상이군인 집단촌임을 침작하여 “충신촌”이라고 불러왔으며 지금은 원호가족이 각지로 이주하여 타일반세대가 전입하여 생활하고 있어 1986.7.1 마을명을 “새로모여드는 마을”이라고해서 신흥동(新興洞)으로 개칭 자연마을로 승격되면서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대리
(上大里)
원상대
(元上大)
원래 상대리 중앙마을로서 마을이름은 “웃터”라 불리어오다가 그 후 중촌(中村)이라 칭하였으며 그 후 연안이씨(延安李氏) 등이 입향(入鄕)하면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상대(上大)와 백수리(栢樹里)를 합하여 상대리(上大里)로 개칭하였으나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대리(上大里)의 중앙에 위차하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원상대(元上大)로 개칭한 이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정
(三亭)
원래 상대리 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마을서쪽에 약 500여 년 된 정자 고목나무 세 그루가 있어 마을 명을 삼정(森亭)이라 고쳐 부른 후 법정마을로 독립된 이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자
(莊子)
원래 상대리 지역에 해당된 마을로서 당시 촌명(村名)을 “장자방(將子房)”이라 하다가 그후 임(林), 노(盧)씨 등이 입향(入鄕)하면서 옛날 이 마을에 장자(壯子)라는 부자(富子)가 살았다고 하여 마을이름을 장자(壯子)라고 고쳐 부른 후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로 독립된 이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백
(上栢)
마을 여러 종류의 나무가 울창하여 백수(栢樹)라고 하다가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하여 도로를 중심으로 윗쪽에 위치하므로 상백(上栢)이라 고쳐 부른 후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백
(下栢)
마을에 여러 종류의 나무가 울창하여 백수(栢樹)라고 칭하다가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을을 상·하로 분할함에 따라 백수(栢樹)의 아랫 마을이라 하여 하백(下栢)이라 이름 한 후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림리
(鳳林里)
원봉림
(元鳳林)
원래 봉림리 중심마을로서 비봉산의 큰떨(바위가 운집되어 있음을 뜻함)의 형국(形局)이 마치 암수의 형태로 되어 있어 암봉은 알을 품고 앉아 있고 숫봉은 마을을 향해 나는 것 같아 봉(鳳)에 마을이름으로 붙이게 되었고 마을 어느 곳이나 봉(鳳)이 좋아하는 오동나무 숲이 많이 있어 임(林)자를 합하여 봉림(鳳林)이라 이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발산
(鉢山)
원래 봉림리 지역에 해당된 마을로서 마을을 둘러싼 산지형(山地形)이 “발대형”이라하여 마을이름을 발산(鉢山)이라 부르고 있으며 해방 후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부락으로 독립된 이래 변함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기
(新基)
원래 봉림리지역에 해당되며 당초에는 발산마을에 속한 마을로서 마을이름을 처음에는 “새터”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마을 명을 한자화할 때 같은 뜻으로 신기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척치
(尺峙)
원래 봉림리지역에 해당된 마을로서 마을의 지형(地形)이 자(尺)처럼 생겼으며 도화면 경계지점인 당재고개 밑에 있다하여 척치(尺峙)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사
(金砂)
원래 봉림지역에 해당된 마을인데 천등산 자락에 위치하고 금탑사(金塔寺) 아래 있는 마을로서 옛날 이산에 금빛 나는 암석(또는 탑)이 있고 마을에 모래가 많아 금사리(金砂里)라고 불렀으며, 금탑사 아래 입구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구라고 불렀으나 일제초기에 금사리(金寺里) 또는 금사리(金砂里)라고 표기하였고 해방 후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로 독립되면서 마을 명을 금사(金砂)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수리
(長水里)
원장수
(元長水)
원장수리 중앙에 해당되며 마을의 지형이 고흥읍 호형리에 뻗어내린 산이 노루머리와 같다고하여 장수(獐首)라 부르다가 마을앞 장수천(長水川)의 이름을 따서 장수(長水)로 개칭한 이래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으뜸마을이라하여 원장수(元長水)로 하였고 1985년도에 장수저수지가 시설되면서 연등리지역으로 옮겨 새터를 잡아 현재의 마을이 형성됐다.
연등
(蓮嶝)
원래 장수리지역에 해당되며 마을 뒷산이 경사가 급하여 소가굴러 떨어졌다하여 “두락”이라 부르다가 마을 앞에 종침연(鍾沈淵)이 있고 마을의 산등성이에 위치한다하여 연등(蓮嶝)이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포리
(上浦里)
평촌
(平村)
원래 상포리지역에 해당된 마을로서 해창만 바닷가의 입구(머리)에 위치하므로 "갯머리"라 하였으며 벌판에 있는 마을이므로 평촌(平村)이라고 개칭하였으며 마을 앞 삼거리 도로는 국도 15호선과 지방도 855호선과 연결된다.
중흥
(中興)
원래 상포리지역에 해당된 마을로서 약 500여 년 전 마을 뒷쪽 두원면 운암산 중터에 중흥사(中興寺)라는 큰절이 있어 절이름을 따서 마을이름을 중흥(中興)이라 이름하여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로 독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동
(紫烟洞)
옛날 이 마을에 자연제(紫烟濟)라는 큰 서당이 유명하여 자연동(紫烟洞)이라 불러왔으며 본래 이곳은 조선시대 고흥지방의 광물의 일종인 자연동(自然銅)이 채광된 곳으로 추측되며 자연동(自然洞)이 자연(紫烟)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촌리
(南村里)
원남촌
(元南村)
1914년 일제초기에 지방행정구역 폐합시 남촌리 일부를 상포리에 이관하고 남촌리로 독립행정리가 되었으며 남촌(南村)이라는 지명은 남쪽을 바라보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마을의 중심을 “각정”이라 하였고 위치가 남쪽을 바라보는 마을의 중앙지이므로 마을이름을 원남촌(元南村)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산
(堂山)
원래 해창만 포구(浦口)에 있는 마을이므로 “해창(海倉)”이라 하였으며 부락 뒷산에 당(堂)이 있어 당산(堂山)으로 바뀌었는데 해창은 흥양현(興陽縣) 남부일대에서 나라에 바치는 양곡과 해산물 및 특산물을 보관 운송하던 곳으로서 대서면의 송림창(松林倉)과 함께 흥양현 15리 바닷가에 있는 흥양현 2개 창고중의 하나인 송곶해창(松串海倉)이 있었던 역사적인 해운수송의 요충지였음.
송산리
(松山里)
동촌
(東村)
옛날 이곳 인근에 “각정”이라는 곳에서 동쪽에 위치하므로 동촌(東村)이라 불러왔다고 하며 점암면 천학리와 접하고 있는데 1986년 법정마을로 독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신월동
(新月洞)
원래 바다였으나 해창만 간척지 개답 후 타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하여 이곳에 정착한 후 1988년도에 신월동(新月洞)으로 명명 자연마을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서촌
(西村)
옛날이곳 인근에 “각정”이라는 곳에서 서(西)쪽에 있어 서촌(西村)이라고 불렀으며 포두면의 북쪽 끝에 운암산의 남쪽 자락에 위치한 마을 임.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로 독립 현재에 이르고 있음.
동산동
(銅山洞)
골짜기의 지형이 마치 용(龍)이 숨어있는 형국(形局)이라하여 “용은곡(龍隱谷)”이라 하였는데 약 150년 전부터 이곳에서 고흥지방토산물의 일종인 자연동(自然銅)이 채광되었다고하여 동산동(銅山洞)이라 불러왔으며 1959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로 독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만화
(晩花)
약 300여 년전 이 마을 샛터에 만화정(晩花亭)이라는 유명한 정자가 있어 마을이름을 만화정(晩花亭)이라 불러왔으며 1956년에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로 독립된 후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점암면과 접하고 있는 마을이다.
오취리
(梧翠里)
상오
(上梧)
예부터 북쪽에 있는 길두리 비봉산에서 봉(鳳)의 새끼 자웅이 있어 ‘비오동(飛梧桐)이면 부서(不棲)하고 비죽순(非竹筍)이면 불식(不食)한다’하여 봉덕(鳳德)앞에 죽도(竹島)가 있어 오동(梧桐)이 잘 자라는 오동도(梧桐島)에 봉황(鳳凰) 자웅이 날아와서 숫봉(鳳)은 상오(上梧)에 암봉(鳳)은 취도(翠島)에서 둥지를 틀었다하여 봉래면(蓬萊面) 오동도(梧桐島)라 칭하다가 오취리(梧翠里)로 개칭했다, 그후 1956년에 상오(上梧)라는 자연마을로 독립 되었다가 1963.1.1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두면(浦頭面)에 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신오
(新梧)
원래는 상오마을에 속했으나 본동과 떨어져 있는 관계로 행정 등 불편함이 있다는 주민의 뜻에 따라 1995.12.29 분동되어 마을 명을 신오라 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오취
(梧翠)
옛날 이 섬에 봉(鳳)이 좋아하는 오동나무가 많고 봉이 살았다는 전설에 의하여 이 섬을 오도라 하였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 초기 행정구역 폐합시 마을 명을 오취(梧翠)라 개칭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달성
(達城)
1925년에 형성된 마을로서 설촌(設村)당시에는 “넉섬”또는 달도(達島)라고 부르다가 1986년7월1일자로 정식 법정마을로 승격되어 뜻을 모아 성공할 마을이라는 뜻으로 달성(達城)이라고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관리부서

    포두면

  • 연락처

    061-830-6316

  • 최종수정일

    2020-02-27 08:01

  • OPEN,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관련사이트

상단으로 이동